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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log/사는 존재

[lifelog] 타인을 견디는 것

by 노무사 송글 202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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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충분한 잠을 잔 것처럼 새벽에 개운하게 번쩍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티포트에 물을 끓여서 상온에 꺼내 둔 계란 두 개를 딱 8분만 넣었다 꺼내 노른자가 쫀득하게 익은 반숙계란에 차 한잔을 마시고 나면 차분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차고 푸른 새벽 공기 냄새를 맡으면 어느 날 긴 잠에서 퍼뜩 깨어나보니 알았던 모든 사람과 일궈 놓은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기이한 기분이 든다.

 
동네에서 일찍 여는 브런치 가게를 검색하다가 찾은 카페가 있다. 브런치는 퀄리티에 비해 좀 비싼 느낌이지만 공간도 넓고 사람도 많지 않고 음악도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소셜하우징+카페+문화공간 컨셉인듯했다.
 
사람도 많지 않고 엄청 조용했는데 어떤 사람이 음식을 엄청나게 쩝쩝쩌쩌ㅃㅂ쩝하면서 드시는 소리가 울려퍼져서 기겁했다. 자기가 쩝쩝거리면서 먹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아는데 개의치 않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좀 불쾌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사무실 자리에서 손톱 깎는 사람 이해되냐는 논쟁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범주일까..(개인적으로는 이것도 좀 이해안된다. 굳이..왜 회사에서..)
 
걸어가면서 흡연하고 침 뱉는 사람+만원 지하철에서 입구에 있는 사람 무리하게 밀면서 억지로 구겨 타는 사람+버스 뒷문으로 타는 사람+좁은 식당에서 가방 자리까지 테이블 2개 차지하고 먹는 사람을 한꺼번에 만난 어떤 퇴근길에는 공중도덕 박살난 사람들끼리 모아서 교화훈련소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독재자 같은 망상이 절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지개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라는 인간에게도 짜증나는 점이 꽤 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미 알고 있지만 못고치고 있고 아직 모르고 있는 짜증나는 점을 모두 견디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수용될 수 있다면 타자가 아니다. 살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수 없고 타인은 블랙박스다. 갖은 인간이 부대껴 사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그저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모서리가 둥글어지기를 희망한다. 

 
요즘 들어 친구들과 지인들이 우후죽순처럼 결혼 소식을 전한다. 한 주 걸러 결혼식이며 청첩장 모임이다. 같이 벙커에서 야자 하던 고등학교 친구도, 노무사 동기들도, 성당 교우님들도 결혼을 한다. 그럴 나이가 되었지. 시간이 지날 수록 주된 경조사가 결혼식에서 돌잔치 되고 자녀 결혼식 되고 본인 장례식 되고 그러는 거겠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비슷한 원리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을 체험해 보고 결정하기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보고 결혼하기에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특히 직업과 배우자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는 현실적으로 더욱 한정되어 있다. 평균수명까지 산다고 했을 때 대부분 인생 초반부에 직업이나 배우자를 결정하게 될 것인데, 그 때 선택한 직업보다 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적성에 맞는 직업이 존재할 수도 있고, 그 때 선택한 배우자보다 더 완벽한 소울메이트가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해 보니 너무 적성에 안맞아서, 같이 살아 보니 너무 성향이 안맞아서 자기 인생이 지속적으로 망가지고 불행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거에 자신이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꽤 오래된 영화를 최근에 봤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기혼자 버전 같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파랑새는 없고 손 안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게 살아가는 것이고, 그건 유감스러운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고귀한 순리다.
 

고드래곤.. 고Yong노동부

 
그간 중앙노동위원회도 한 번 갔다왔다. 작년 이맘 때만 해도 맡았던 사건 직접 변론할 준비하고 자료 챙기느라 엄청 긴장해 있었는데 사내노무사가 되어 따라간 중노위에서는 사진 찍을 여유가 생겼다ㅎ 담당 노무사님 밥도 안넘어가신다고 점심도 굶고 저녁도 굶으시다가 저녁 8시 되어서 승소 문자 오자마자 이제 밥드셔야겠다고ㅠ 했다.. 난 심문회의 있는 날이면 기빨려서 일단 먹고봤는데ㅋㅋㅋㅋ
 

 
대학친구들 만났는데 연말에 또 보고싶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들하고 먹는 술은 술술 들어가지. 1차로 해산물 요리+와인 먹고 2차 갈 곳을 찾아 헤맸는데 죄다 만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에는 인간이 너무 많다. 웨이팅 걸어놓고 겨우 들어갔는데 술도 안주도 맛있었다. '법원 올드패션드'를 시켰는데 프리미엄 라인이 '대법원 올드패션드'인거 웃겼다ㅋㅋㅋ 노동위원회 올드패션드/헌법재판소 올드패션드도 만들어줄래요?ㅋㅋㅋㅋ(뇌절)
 

 
온보딩 교육 들으러 연수원도 갔다왔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다른 그룹사 분들을 많이 만났다. 조원들께 들은 칭찬샤워는 특히 행복했다. 나는 항상 나의 부족한 점에 초점을 맞춰왔고 그런 태도는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자존감과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원들이 칭찬해주신 것처럼 나도 나의 좋은 점에 대해서 조금 더 자랑스러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낯을 가리지만 한 번 내 사람이 된 사람들을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즐거워한다. 나는 유쾌하고 발랄하지 않지만 차분하고 신뢰를 준다. 나는 종종 게으르지만 한 번 세운 목표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반드시 이뤄낸다. 



모두의 호감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되, 예의를 갖추어도 나를 적대하는 사람의 미움은 흘려보내도 좋다는 원칙으로 살겠다. 그런 사람의 적은 나 뿐이 아닐 것이고, 강가에 앉아 고요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둥둥 떠내려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것들>

 
1)시골구석에 숨은 아름다운 코스모스밭
 

 
2)부산에 가서 먹은 음식. 이재모피자랑 생선구이 먹으러 또 가고싶다. 가도 가도 또 가고싶은 고향
 

 
3)어떤 청첩장모임 집들이에서 결혼식 당사자가 해주신 말도 안되게 맛있는 잔치음식
 

 
4)아름다운 늦여름-초가을의 유유자적 반포한강공원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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