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는 좋아하던 작가가 내 나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세밑이 가까워 오는 어느 뜬금없는 날에는 그 작가가 썼던 이야기의 고통스러운 악몽을 잠깐 되살렸던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제법 역사적인 시절의 서른이었다.

은지가 보내준 2024년을 마무리하는 질문들을 하나씩 업데이트하며 올해를 떠나보낼 예정

1) 12월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세 가지
글뤼바인
밀크티(시나몬 향이 나는 것이면 더 좋다)
가리비
2) 새롭게 배운 것
근력운동
3) 도전해 본 것
장롱면허 탈출(진)
4) 나의 요즘 관심사
회사 안 다니고 돈 버는 법 찾기
5) 좋았던 장소
바닥이 안 보이던 깊고 푸른 물속

6) 좋았던 작품
가여운 것들 (영화)
7) 올해의 소울푸드
콩국수
8) 올해의 애착템
장마도 폭설도 쾌적하게 지나게 해 준 락피쉬 장화
9) 새로 알게 된 사람들
일하다가 만난 사람들(유쾌한 일 아님 주의)
10)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퇴근길 카피바라 씨의 전화. 너는 나의 명랑이고 용기야
11)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
침대에서 마시는 캐모마일 차
12)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우리가 언제 봤다고 대뜸 반말/반존대하는 사람
13) 봄에 있던 일
생일 기념으로 홍콩+마카오로 여행을 다녀왔다.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에 따라 PT를 받고 헬스를 시작했다. 1년간의 치료를 종료하고 약을 끊었다.
14) 여름에 있던 일
사건이 많아서 바빴고 지방 출장을 많이 다녔다. 하고 있던 미국주식의 판을 키웠다.
아. 초여름엔 살고 있는 집 천장 누수 문제로 퇴근해 보니 바닥이 물바다가 된 사건도 발생했구나. 저녁에 급하게 에어비앤비를 구해서 2박 3일 동안 지냈다. 와.. 주거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지를 꺾기에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15) 가을에 있던 일
이사 갈 집을 열심히 알아보면서 발품을 팔았다. 이 정도 가격의 집은 이 정도 평수에 이 정도 컨디션이라는 점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토익점수도 갱신했다.
16) 겨울에 있던 일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17) 올해의 성장
힘든 일이 여럿 닥치고 여럿 마무리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일하면서 그렇게까지 심각할 문제는 사실 없다는 걸 생각했다. 대하기 무섭고 부담스러운 높은 분들도 내가 여길 나가면 그냥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뭐 엌저라구욥
18) 실패와 배운 점
고급진 비즈니스 영어 학습을 위해서 새해 결심으로 뉴스프레소라는 곳에서 교재를 샀는데 처음엔 점심시간에 틈틈이 열심히 하다가 결국 잘 안 하게 되더라. 큰 실패라기보다 그냥 작은 돈 낭비였고. 배운 점은 뭐든 휘둘려서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는 것.
19) 올해 가장 노력한 일
미국주식투자. 1년간의 수익과 배당금을 합친 금융소득이 월급을 초과하는 경험을 처음 했다. (사실 불장이었어서 이것도 못 번 사람 없지 않을까ㅠ) 근데 사고팔고 하지 말고 좀 더 진득하게 묻어둘걸 후회가 된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을 초과하는 그날까지 화이팅...
20) 요즘 취미
문장 수집하기

21) 배우고 싶은 것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법
22) 고마운 사람들
서른 해를 살아보니 이제 이쯤까지 계속 친구로 남은 사람들
23) 감사한 일 5가지
매일 무슨 얘기를 해도 재밌는 동반자가 있는 것
가족에게도 말 못할 괴로움을 들어주는 오랜 친구가 있는 것
몸이 건강했던 것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 때에도 잠은 잘 자는 것
정말 싫은 사람이 없는 것
24) 아쉬운 일 5가지
운전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것
쓸데없이 깊은 얘기를 한 것(모두의 친구에게는 마음을 많이 쏟으면 안되는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순간이 있었던 것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살지 못한 것
하고싶은 말과 듣고싶은 말이 줄어든 것
25)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
불안한 망상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는 온전하게 평화로운 휴식
26) 10년 후에도 잊고 싶지 않은 일 3가지
- 죽음을 생각할만큼 엄청난 심적 압박을 겪었던 시기에 하느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어서 와중에 한밤중에 성당에 들렀다 집에 가곤 하셨다는 상사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게 좀 울컥했다. 인간이 한없이 무력하고 고독해져서 신의 발 밑에 엎드릴 수밖에 없는 순간의 이야기는 당해내기 어렵다.
- 확 그만 살고싶어질 때마다 바다거북과 헤엄쳤던 일을 떠올리고 싶다. 그처럼 내가 그동안 몰랐던 재미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잊고싶지 않다.
- 그 해 겨울의 나는 네가 없는 어떤 미래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
27) 나를 이루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미워하는 것들, 내가 애증하는 존재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들, 내가 지키려는 것들, 내가 (무엇을 위해서) 무릅쓰는 것들, 내가 (무엇을 무릅쓰고서라도) 얻으려는 것들, 내가 욕망하는 것들, 내가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수치와 우울, 불안과 환희
28)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한 가지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29) 고생한 나에게 한마디
대충 살아도 살아진다. 다 책임지려고 하지마라.
30) 2025 새해 다짐

31) 2024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 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플롯을 가진 영화 한 편 같았고, 그 해의 나는 그저 슬픈 짐승이었다.

1. 올해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요?
팀원들 (직장) / 카피바라 씨 (직장 외)
2. 올해 내가 더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나요?
살다 보니 어쩌다 보니 연락이 조금 소원해져 버린 한때 가까웠던 친구들
3. 올해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의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1)윤석열의 (2)계엄 선포. 한밤에 몸이 떨리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4. 올해 내가 누군가를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성공회 성가수도회에서 운영을 시작한 미얀마 반달공부방에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어쨌든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은 어린 존재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
https://holycross01.imweb.me/news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공식 홈페이지 입니다. 수도회의 새로운 소식과 활동들을 만나보세요.
www.sister.or.kr
5. 올해 내 주변에서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올해 친구들과 동료들이 결혼을 많이 했다. 아마도 큰 변화겠지?
6. 올해 나와의 관계가 더 깊어진 사람은 누구인가요
장기연애 끝에 인생을 함께할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7. 올해 오랜만에 연락하거나 만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5의 친구들의 청모 또는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8. 올해 내가 마음속으로만 고마움을 전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계엄의 밤, 국회 담장을 뛰어넘어 본회의장으로 달려가 계엄해제에 표결한 모든 의원들. 특히 탄핵안 표결에서 당론과 반대되어 미움받고 불이익받을 것을 알면서도 옳다고 믿는 방향을 선택한 의원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과 감사를 전한다.
9. 올해 관계에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성당 활동에 조금 소원해진 면이 있다. 내향인으로서 사회생활에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이 있는데 주일이면 그게 다 떨어지고 없었고 모든 게 너무 피곤했다.
10. 올해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여행을 가면 늘 내가 계획 세우고 예약하고 갖은 총무 역할 해서 편안하지만은 않았는데 지난 봄의 홍콩+마카오 여행은 카피바라 씨가 총대 메서 그냥 졸졸 따라다녀 보니 좋더라.

1. 올해 나를 가장 웃게 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두 번의 롯데월드.
우리는 이제 이만큼 나이를 먹었고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제법 진지한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같이 노는 어떤 순간에는 종종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로 돌아가서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배가 찢어지도록 웃잖아


2. 올해 받은 도움 중 가장 감사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어떤 큰 일을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처리하라고 하면서 스스로도 우왕좌왕하면서 일관성 없는 지시를 내리는 상사 때문에 현타가 몹시 세게 왔는데 그날 도움을 준 팀원들이 없었다면(그리고 그 상사 결국 집에 안 갔다면) 그 일을 계기로 퇴사했을지도
3. 올해 내가 가장 기뻐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카피바라 씨가 좋은 논문을 발표해서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그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응원하고 지지하려고 한다.
4. 올해 일상 속에서 소중하게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요?
오래된 친구들과 놀았던 일.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게 점점 어렵다는 걸 알아서 그런 시간이 소중했다.

5. 올해 나 자신에게 가장 관대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슬프게도 나 자신에게 항상 관대하지 못했다.
6. 올해 나를 웃게 만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회전바구니를 타면서 아무 노래나 부른 일
7. 올해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존경받고 싶은 마음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사랑받고 싶은, 칭찬받고 싶은, 인기를 얻고 싶은, 대우받고 싶은, 위로받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천대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업신여김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잊힐까 두려워하는, 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저를 해방하소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저를 해방하소서.
8. 올해 스스로를 격려했던 말은 무엇인가요?
너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네 안의 무엇인가를 죽이고 싶은 것이다.
9. 올해 나를 행복하게 만든 냄새나 향은 무엇인가요?
버진코코넛오일

10. 올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요
올해도 역시 같이 있으면 가장 재밌는 카피바라 씨
실없는 얘기도 진지한 얘기도 즐거운 청둥오리

1. 올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물고기 떼 사이에서 헤엄치던 순간

2. 올해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노무사님 덕분에 위로가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3. 올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3년 넘게 장롱면허였는데 서울시내에서 도로주행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서 모교를 갔다 왔는데 좁은 주차장을 나오다가 뒷바퀴 위를 세게 긁어먹었다. 컴포트존을 벗어나면서 상처도 입겠지만 성장도 하는 거겠지
4. 올해 나를 변화시킨 대화나 말은 무엇이었나요?
직접적인 대화는 아닌데 한 분야에서 1%가 되는 것보단 서너 개 분야에서 상위 20%가 되는 걸 목표로 하는 게 현명할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씀.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악바리 모범생 마인드로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5. 올해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해 온 습관은 무엇인가요?
퇴근하고 별일 없으면 꼭 헬스장을 바로 갔다. 약속 없으면 평일 저녁은 대부분 같은 메뉴를 먹으면서 식단을 유지했다. 그 결과로 변화한 신체가 마음에 든다.
6. 올해 나를 가장 성장시킨 경험은 무엇인가요?
확실히 고난과 갈등은 그 순간에는 피하고 싶고 그냥 죽고만 싶지만 겪어내고 나면 '그런 일도 겪어 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 다만 그때마다 사람이 좀 진지하고 어두워진다는 부작용이 있다. 마냥 대가리 꽃밭인 해맑은 사람으로 사는 게 스스로의 인생에는 행복할 것 같은데, 어쩐지 자꾸 나이나 연차에 비해서 좀 중요한 일이 맡겨지고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묻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게 그냥 팔자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하나...
7. 올해 내가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예전보다는 개소리를 잘 참게 된 것 같다.
8. 올해 의외로 즐거웠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의의로'에 방점을 찍어, 팀 회식. 여러모로 케미가 좋은 조합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흩어지게 되어서 아쉽다.


1. 올해 놓쳤지만 내년에는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북스테이 방문해서 책만 읽기
2. 올해 나의 일상에 행복을 더한 습관은 무엇인가요?
습관까지는 아니지만 금요일에 퇴근하고 편의점에서 맥주랑 팝콘 사서 영화관 가는 일

3. 올해 후회되지만 내년에는 고치고 싶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잘 웃지 않는 것. 만만해지지 않고자 잘 웃지 않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게 인상으로 굳어가는 것 같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품이 인상에 드러난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4.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취미나 활동을 시도하고 싶나요?
뉴스레터 제작
5. 올해 이루지 못했지만 도전해 본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회과학자를 위한 데이터과학>이라는 책을 샀다. 내년에는 방송대 데이터통계과학과에 편입해서 좀 더 제대로 공부해 볼 생각이다. 법률번역을 배울 때처럼 한꺼번에 많이 못가도 조금씩 새로운 것을 하나씩 배워 나가는 데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6. 올해 처음 해본 취미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보홀에서 처음 해본 스노클링. 바다는 우주처럼 깊고 무섭고 신비로웠다. 그래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고래 울음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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