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이라도 매주 기록하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자꾸 무기력해져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
포시즌스호텔 더마켓키친을 방문했다. 땅 파다가 유적이 나왔는데 차마 덮어버릴 수가 없었는지 바닥을 투명하게 처리해서 조선시대 집터 같은 유적을 발 밑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접시 들고 걸어 다니다 보면 조금 어지럽지만 나름대로 멋은 있었다.
해산물 메뉴와 디저트 퀄리티가 좋았다. 이용시간은 입장시간부터 2시간 제한이 있고, 탄산음료나 주류는 별도로 주문해야 하지만 물과 탄산수, 커피와 차 메뉴는 포함이다.
나는 사치품에 대한 물욕은 적은 편인데 경험에 대한 욕심은 아주 많은 편인 것 같다. 제일 만족스럽고 아깝지 않은 소비가 뭐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주로 생활을 편리하고 화려하게 하는 물건보다는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쓴 돈과 내 교육과 건강에 투자한 돈이다. 물건은 닳고 낡으며 무덤에 못 가지고 들어가지만 추억과 역량과 체력은 그렇지 않다.
기준을 확실히 세워서 돈의 절대적인 액수에 연연하기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효용을 고려해서 현명하게 지출하는 합리적 경제인이 되어야겠다.
대학교 교지 후배들에게 (몇달 전에) 왔던 기고 요청 마감일이 다가와서 오랜만에 새벽까지 글도 썼다.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대체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고민을 하면서 아무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목차도 정리되고 하고싶은 말도 정리가 되어서 어떻게든 한 가닥의 주제의식을 잡고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 써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모른다는 위화의 말을 생각했다.
학기 내내 글감을 고민하고, 취재하고, 글을 쓰고, 토씨 하나의 오류까지 찾아내려고 마지막까지 교열하면서 책 한 권을 엮어내면서 훈련한 이십대 초반의 습관은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하는 안목을 높여줬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이 쓰는 맞춤법과 문장, 글의 최저 수준에 대한 기준도 엄격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그 시간이 지금의 내 인생에 구체적으로 무슨 쓸모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내게 세상의 온갖 유용하지 않은 것들을 힘껏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사실은 현생이 못견디게 건조하고 쓸쓸할 때 종종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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