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자의 날에 책 한권 들고 백팩 한개 메고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선운사로 뚜벅이 템플스테이를 갔다왔다. 중간과제 하고 이사준비하느라 후기 이제야 씀ㅎㅎ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고창흥덕터미널-선운산버스정류장-도보 약 2km))
산 넘고 물 건너..순수 이동시간만 4시간 넘게 걸린다. 1시간에 1대 오는 농어촌버스도 오랜만에 탔다.

혼자 빗속을 뚫고 템플스테이 들어가기 전에 점심때부터 풍천장어구이 뚝딱하는 사람 어떤데
2시쯤 애매한 시간에 가서 넓디넓은 가게에서 혼자 씩씩하게 다 먹었다. 수험생활 한 번 해본 사람들은 다들 이정도 혼밥레벨은 되잖아요?ㅎㅎㅎ
풍천장어는 쫠깃하고 통통해서 나름 맛있었지만 히츠마부시 쪽이 조금 더 내 취향의 장어요리라고 생각했다. 혼밥할 때 맛있는 걸 먹으면 누구랑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그냥 내가 먹고싶으니까 스스로에게 맛있는 걸 대접하는 기분이라 뿌듯하다.

버스에 내려서부터 계속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무서울만큼 조용한 숲길을 걸으면서 내내 맑다가 왜 하필 이 날만 비가 오는지 (그것도 꽤 굵직했던 빗줄기) 역시 인생은 원래 반드시 마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뭐 어쩔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비 온다고 도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냥 일단 갈 길 가야지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고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끝단이 젖은 바지를 말려놓고 잭살차를 한 잔 마시니 좀 평화가 찾아왔다.
새 소리랑 나뭇잎이 바람을 흩는 소리만 들렸고 불필요한 소란이 없어서 좋았다.

레우코스씨가 템플스테이를 어떻게 보낼지를 추천해줬지만 따로 산책은 안했고.. 비 오는 마당을 내다보며 차 마시면서 시집 읽다가 저녁공양때까지 까무룩 잠들었다.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나이다."
선운사 지장보살이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지옥에 빠진 마지막 중생을 구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왠지 찡했고 묘진전이 생각나고 그랬다

공양간 갔다오는 길에 만난 다람쥐친구

고양이 친구

고요한 차밭
예불도 한번 참석해보고싶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어두운 숲길을 15분쯤 걸어갈 자신까진 없어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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