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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에 뭐 볼까 하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얼떨결에 다 봐버렸는데 이렇게 유명한 영화인지 몰랐다.
어둡고 빛바랜 느낌의 화면과 낡고 복잡한 내부구조의 건물과 페인트 칠이 벗겨진 벽같이 홍콩영화 하면 떠오르는 심상들이 몇 있다.
하나같이 외롭고 방황하고,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며 부유하는 인물들은 불건강하거나 우울해보이는데도 어딘가 마음을 꽉 죄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매료하는 데가 있다.

막바지에 필리핀의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기차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연착하지 않는 경우보다 연착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인도 기차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으면서 언제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할까를 짐작해보면서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바깥 풍경을 기웃거리던 날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침마다 짜이를 파는 상인들이 복도를 지나다니며 외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기차가 사막을 가로지를 때는 헐거운 창 틈으로 고운 모래가 들어와 쌓이기도 했다. 살아갈 날이 너무 많이 남아 아직 뭐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두려웠다. 괴롭도록 흔들리고 외로웠는데 정신차려보니 훌쩍 꽤 오랜 세월이 흘러 있다.
예리한 정신과 섬세한 마음을 오롯이 품고 살던 사람들은 비교적 빨리 다른사람들의 곁을 떠나가곤 한다.
그럴 때면 무뎌질 수 있는 사람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알게 되는 세상의 새로운 면모들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사히 세월을 흘려보내려면 무뎌져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외로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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