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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넷플릭스 시리즈 리뷰]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

by 노무사 송글 202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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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리즈물에 한 번 정을 붙이면 아무리 시즌이 길어도 끈질기게 다 끝내버린다.
<그레이 아나토미> 시리즈는 특히 좋아해서 시즌17까지를 정주행한데다가 스핀오프인 소방관 드라마 <스테이션19>도 국내에서 업데이트된 시즌까지 다 챙겨봤다.

<그레이 아나토미>나 <스테이션19>에서 숀다 라임스가 인물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인물들 각각이 자기 인생을 별안간 비집고 들어오는 사건들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인생의 구멍들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처해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너무나 사랑한다.

아멜리아 셰퍼드의 유명한 슈퍼맨 자세.

Why do we even try, when the barriers are so high and the odds are so low?
Why don't we just pack it in and go home? It'd be so, so much easier.
It's because, in the end, there's no glory in easy.
No one remembers easy. They remember the blood and the bones and the long, agonizing fight to the top.
And that is how you become legendary.


특히 <그레이 아나토미>는 후반부로 갈수록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배경으로 하게 되고, 페미니즘, 미국의 의료체계, 방역정책, 이민자 정책, 인종차별 등 여러가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색채가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숀다 라임스의 작품이고, 주변에서도 추천하길래 시작했다.
9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고, 각 에피소드가 1시간이 넘는다.

 

 

스포일러 존재 
[스포일러 존재]

THIS WHOLE STORY IS COMPLETELY TRUE.
EXCEPT FOR ALL THE PARTS THAT ARE TOTALLY MADE UP.

시작부터 반복적으로 이런 문구가 나와서 당연히 픽션이겠거니 하면서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등장인물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여주길래 실화임을 알게 되었다.

일단 시작한 이상 반전이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킬링타임용으로 재밌지만, 개인적으로 별 감명은 없었다.

초반에는 누가봐도 애나가 안하무인에 현실감각도 없는 허언증 환자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민자 혐오에 대한 비판과 페미니즘을 어설프게 끼얹어서 애나에게 공감하도록 하는 반전 서사를 꾸민 모양인데, 솔직히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았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잘 만든 시리즈인지와는 별개로 생각할 거리는 많이 던져주었다.

미국의 다른 지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상경'한 사람들은 누구든 그 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입증하고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사람대접을 번다. 세계 제일의 욕망과 야망의 도시에 입성한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치열하게 아귀다툼을 한다.

애나와 라포를 형성하고 감정적으로 교류하면서 자신들이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다고 믿었던 변호사 토드와 기자 비비안이 애나에게 끝까지 뒤통수를 맞는 반전이 있었거나, 결국 그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애나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점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났더라면 차라리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중심'인 뉴욕 사회의 생리에 관한 시사점이 있는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그걸 말하고싶었다면 비비안과 애나가 마지막으로 대면할 때의 뜬금없이 애틋한 교감 장면은 넣지 않았겠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생각해볼만한 주제라면 도대체 우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폴은 직장동료일 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던 비비안을 방패막이 삼아 보신한다. 애나는 호화여행에서 레이첼의 법인카드로 거액을 결제해버리고는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게 나오고, 레이첼은 그동안 한 푼도 내지 않고 애나와 어울렸으면서 애나의 이야기를 팔아 큰 돈을 벌고는 경찰이 애나를 체포하도록 협조한다.

그러나 이런 노골적인 배신의 순간에 유난히 위선과 치졸함이 증폭되어서 그렇지, 자신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그 관계의 쓸모를 전혀 계산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실로 아무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타인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많지 않다는 것이(어쩌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어서 스스로 사랑과 관심을 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고자 하여 이렇게들 피곤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중략)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에서


+


인스타그램은 내가 누구랑 어울리고, 어딜 갔고, 뭘 먹었고, 이만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실시간으로 전시하는 성격이 강한 매체이다보니 어느 순간 포스팅을 하는 행위 자체가 관심 받고싶은 욕망을 전시하는 것같이 느껴져서 약간 옷을 안입은 느낌(...)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장면들 너무...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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