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번역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법제처에서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라는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일반 국민이면 누구나 법령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무사가 되기 이전까지 법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개전의 정'이라는 말은 노무사가 된 이후에 알게 됐다. 주로 징계양정에 대한 자문 의견서를 쓸 때나 노동위원회 서면을 쓸 때 자주 쓰게 된다. 징계 대상자가 자신의 비위행위에 대해서 '뉘우치는 모습'이 있거나 없으므로 해당 징계 양정은 적당하거나 과도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식이다.


꼭 뭔가 명백히 못된 짓을 해서 타인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어떤 생각과 말과 행실에 대해서 자책하게 될 때가 있다.(mea culpa, mea cupla!)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납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보통은 거기서부터도 쉽지 않다. 합리화라는 높은 방어기제의 벽을 넘어서 어렵게 납득하게 되더라도 생각과 말과 행실은 모두 습관의 경로를 거치는 것이라 금방 바꾸기는 쉽지 않다.
실수는 인간적인 것이나(Errare humanum est) 실수를 고집하는 것은 악마적이다(Perseverare autem diabolicum).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면 최소 넌씨눈 최대 빌런이 된다. 성인이 되기엔 글렀으니 개전의 정이 있는 삶이라도 지향해야 하겠다.

영성은 좋은 것을 좋아하는 영혼의 능력이라고 한다. 보통은 나이를 먹을수록 편견과 잣대가 많아지고, 편견과 잣대가 많아지면 당연히 사람이든 사물이든 좋아하는 쪽보다 싫어하는 쪽이 많아지게 된다. 새파랗게 어려서부터도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정체성과 더 밀접하게 연결된 삶을 살아왔으나, 갈수록 좁아지는 세계에서 쓸쓸하게 늙어가고 싶지는 않으니 생각의 습관적인 경로를 가다듬고 몸에 힘을 좀 빼고 살아야겠다.
타고나길 봄날의 햇살같이 밝고 다정한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타고난 내향인이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살가운 태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그러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아서 심적으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갖고 대하는 편이고, 그걸 후회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런데 가-끔 퉁명스럽거나 쌀쌀맞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통화라도 하게 되면 아니 나도 저런가? 싶어서 반성하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좋은 태도는 '드라이하지만 나이스하게' 라고 하더니.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되 너무 친한 척하지 않는 게 최고인듯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차곡차곡 삶을 쌓아 가다가도 이따금 마음이 내려앉게 하는 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모든 것이 밀물 앞의 모래성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부작사부작 사소한 즐거운 일이라도 찾아야겠는데 책이든 영화든 감흥이 생기는 것들이 귀해져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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