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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영화리뷰]《서브스턴스,(2024)》, 코랄리 파르자

by 노무사 송글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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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되찾지 못한 인간만이 방황하는가?"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서브스턴스> 스포일러 존재

 

아름다움과 젊음은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모두를 미쳐 돌아버리게 하는 것인가? 영화 <서브스턴스>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모르고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어긋난 집착을 했던 어리석은 자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하니 우리는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정도의 교훈적인 주제의식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성원권(citizenship)은 개인이 특정 사회공동체에 속해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어떠한 상태를 의미한다. 법적 지위 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소속감도 포함하며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성원권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의 환대(hospitality) 없이, 특정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만으로는 획득될 수 없다. 환대받지 못하여 공동체 내에서 상호 관계를 맺고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타자'로 간주된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젊었을 때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그녀가 속한 사회공동체가 몹시도 환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동일인의 젊음과 아름다움과 가임능력이 서서히 떨어짐으로써 그녀는 기존에 그녀를 환대했던 사회공동체에 서서히 '타자'로 등장하게 된다. 즉, 의심의 여지 없는 공동체 구성원이었다가 의문의 심판대로 슬슬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이렇게 이해했을 때 엘리자베스 스파클(인 동시에 '수'와 하나인 사람)의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엔딩과 같은 비참한 파멸을 맞아야 마땅한 끝간데 없는 욕심이 아니라, 추방의 위기에 처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안간힘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에 그녀의 조각(...)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자신의 명판 위로 애써 기어가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서브스턴스>에서는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예쁜 여자는 웃어야 돼, 50살이 되면 끝이다 같은 말들)과 젊은 여성의 탄력있는 몸에 대한 핥는듯한 불쾌한 시선이 유난히 부각되고, 실제로 여성의 노화는 외적인 매력의 상실에 더해 가임능력의 감소와 연결지어 더 멸시되곤 한다. 그러나 초반부에 등장하는 젊은 간호사의 본체matrix와 마찬가지로 남성이라고 해도 노화와 매력의 감소로 인한 멸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성원권 획득(유지)에 위기를 초래하고 모멸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매력자본의 빈곤상태는 경제적인 빈곤상태와도 유사하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보다 욕망하는 이미지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이 영화가 정말 섬뜩한 것은 몸이 갈라지고 피로 분수가 만들어지고 내장이 쏟아져서가 아니다. 가진 것(재력 또는 미모)을 비교하고, 과시하고, 덜 가진 사람에 대한 배제와 모멸감이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어느 파멸적인 선택을 추방을 피하기 위한 외갈래길로 오판할 수 있고, 그건 개인의 허영심 같은 인성적 결함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그래서 <서브스턴스>는 그 모든 피와 내장과 점액이 튀는 장면이 끝나고 가만 곱씹어봤을 때 더 뒷골이 서늘해지는 호러일 수밖에 없다. 추방의 공포로부터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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