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log] 요가 Downdog, 청년노무사 간담회, 노동위원회 사건 서면
1.
요가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17년 10월이었다. 인턴을 하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운동에 돈을 써보기로 한 것이었다. 2018년 12월까지 꾸준히 요가원을 다니면서 주 3회 요가를 했다.
2019년에는 고시촌으로 들어오면서 다니던 요가원을 못가게 되었다. 동차 때는 판례 외우느라 바빠서 운동을 할 여력이 없었고, 그래도 1년 넘게 요가로 길러둔 체력 덕분인지 1년을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앉아서만 보냈는데도 저절로 체중의 10%가 줄었다. 밥을 너무 대충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예 때는 고시촌에서 잠깐 요가원을 다녔지만 신촌에서 다니던 곳과 비교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두 달 다니다가 그만두고 Downdog이라는 어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화하고 싶은 부위(코어, 등, 허벅지, 엉덩이, 척추 등)를 선택할 수도 있고, 운동 시간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서 바쁜 사람들에게 좋다.
유료 어플이긴 하지만 요가원 수강료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하다. 처음에는 요가 밖에 없었는데 인터벌 트레이닝, 명상, 러닝 어플도 하나둘씩 출시하더니 멤버십 하나로 이 모든 앱을 다 사용할 수 있다. 연초에 할인행사를 하는데 1년 구독에 19달러다. 꾸준히 할 의지만 있으면 굉장히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체력적으로도 도움이 되지만, 요가를 하다보면 낮 동안 열받았던 일이나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신경을 긁었던 일도 과연 그럴만한 일인가? 하고 한 번 내려놓고 가는 객관화 타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거창한 신년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았으나 하던 거나 잘해보려고 한다. 한동안 게을리 했던 요가를 최소 주3회 해봐야겠다. 몸이 아픈데도 업무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내고 신경이 날카롭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체력과 건강은 모든 것이다.
2.
일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보다 감동과 분노의 역치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중심이 단단히 잡힌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와 진실성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변화의 과정은 지리멸렬하고 진실성은 쉽게 더럽혀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조금씩 더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어제는 정당에서 주최하는 청년노무사 간담회에 갔다. 왜 노무사가 되었냐는 질문에 오랜만에 답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동시에 전문성을 활용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는 취지로 대답했고 그건 진심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아무도 외면할 수 없고,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을 선택한 것이지만 먹고 사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왜 하필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저마다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나는 성향상 어떠한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앞장서는 투사가 아니다. 옳은 일을 위한 싸움 자체가 두렵다기보다 그 옳은 일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오래 가지면서 언저리를 맴도는 편이다. 세상에는 딱 떨어지게 니 편과 내 편, 옳은 일과 그른 일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 대학 때부터 대학언론사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노무사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너무 비장한 마음을 갖고 살았더니 정신건강이 많이 망가졌었다.
나는 그리 대단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커리어의 방향을 고민하는 청년 직장인일 뿐이다. 그래도 무뎌지는 마음을 방치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필이면' 이 일로 먹고 살기로 결정했던 이유, 직업적 소명과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결국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
다툼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이 뚜렷하기도 하고, 서면 쓰는 일이 좋아서 노동위원회 사건 업무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쓰는 문장 한 줄 한 줄이 판정 결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문장을 다듬고, 고치고, 또 고쳐 쓰는 일이 부담은 된다.
주말 밤을 꼬박 새서 맡고 있던 사건의 마지막 재심답변서를 마무리했다. 초심에서 승소했던 기간제근로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이다. 연휴를 갈아넣고 심문회의 직전까지 세번째 이유서를 밀어넣으면서 열심히 했던 사건이었다. 사건을 이겼을 때도 그랬지만 아직 결과를 알 수 없었을 때에도 의뢰인께서 내가 쓴 이유서를 읽고 눈물 날 뻔했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노무사님이 애써주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하필이면' 이 일로 먹고 살기로 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디 이분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서 자신들이 받아 마땅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